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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지명으로 재구성하는 공산 전투의 실제

공산 전투와 관련된 지명들은 오늘날 대구광역시 일대에 흩어져 있다. 동구·북구·남구·수성구에 산재된 이 지명들은 주로 왕건이 피신한 장소를 중심으로 남아 있으며, 공산 전투의 전개 양상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물론 지명과 전설을 모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워낙 인지도가 높은 역사적 인물이었기에 실제보다 과장된 전설이 생겨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딛고 보다 명확한 역사의 실체를 만나기 위해서는 관련 지명과 전설들을 차분히 검토해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먼저 '대왕재'라는 지명을 살펴본다. 대왕재는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과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가성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해발 661m인 도덕산 아래에 위치한 대왕재는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중세/후삼국 2026.07.02

공산 전투, 왕건 생애 최대의 패배

927년 9월, 견훤이 경주를 유린하고 경애왕을 살해한 직후 왕건은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신라를 구원하기 위함이었지만, 실제로는 기세를 올린 견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이 함께 작용하였다. 왕건이 이끈 고려군은 지금의 대구 팔공산 일대인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후백제군과 마주쳤다. 양측 모두 주력을 투입한 정면 대결이었다.전투의 결과는 고려군의 참패였다. 후백제군은 지형을 이용하여 고려군을 사방에서 포위하였다. 고려군 진영 안에서는 수많은 장수들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다. 기록에는 왕건의 군사가 크게 패하여 여러 장수들이 죽었다고 전한다. 이 전투에서 전사한 장수 중 가장 이름난 인물은 신숭겸(申崇謙)과 김락(金樂)이다. 두 사람은 고려 개국 이래 왕건을 가장 ..

중세/후삼국 202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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