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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이 신라 왕을 죽이고 궁궐을 불태우다

927년 9월, 견훤은 신라의 수도 경주를 향해 대군을 이끌고 진격하였다. 그 직전까지 견훤은 공산 전투를 앞두고 전략적으로 고려와 신라 양쪽을 압박하면서 승기를 쌓아왔다. 조물성 전투 이후 양국 간 화친이 파탄에 이르렀고, 인질 진호의 죽음을 계기로 적대 관계가 본격화되었다. 견훤은 공산 전투에서의 결정적 승리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신라를 먼저 굴복시킬 필요가 있었다. 왕건이 신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한, 언제든지 고려군이 배후에서 압박해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견훤군의 경주 진격 경로는 고령 방면에서 내려오는 육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신라 조정은 이 소식을 듣고 즉각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왕건의 구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견훤은 이미 경주 성 안으로 돌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사..

중세/후삼국 2026.07.01

왕봉규 축출 이후 경남 서부를 둘러싼 고려와 후백제의 쟁탈전

927년 4월, 고려군이 왕봉규 세력을 축출하고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그해 가을 7월, 왕건은 다시 강주 일대를 향해 군대를 움직였다. 이번에는 남쪽이 아닌 그 북쪽을 노렸다. 원보(元甫) 재충(在忠)과 김락(金樂) 등을 보내어 대량성(大良城)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장군 추허조 등 30여 명을 포로로 하였다. 대량성은 지금의 합천 대야성으로, 920년에 견훤이 공략하여 후백제가 오랫동안 장악해왔던 요충지였다. 고려가 이를 되찾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전과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뒤이어 벌어진 공산 전투에서 고려군이 견훤에게 대패를 당함으로써 경남 서부 지역 전체의 판도가 다시 요동쳤기 때문이다.공산 전투 이후 경남 서부 지역에서 고려의 영향력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견훤은 연승의 기세를..

중세/후삼국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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