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건담 기획 칼럼 모음

해설 : TV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에 대하여 <야노테루오(大德雄)>

크리티컬! 2026. 4. 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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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이 처음 방영되던 날의 감회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도 모르겠지만 8년 전인 1979년 4월 7일의 일이다.

나는 당시 OUT이라는 잡지의 편집자였고, 건담이라는 대단한 작품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었기에 편집부원 전원이 편집부 TV 앞에 얼굴을 나란히 하고 있었다. 프롤로그의 시작회, 우선 스페이스 콜로니가 지구에 낙하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장중한 나레이션이 이어졌다. 그로부터 25분 동안 편집부원 모두는 숨소리마저 내지 않고 TV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것은 확실히 대단하다. 우리는 제1화만 보고서도 건담이 대히트를 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후 우리는 건담이 방영되는 매주 토요일 다섯 시 반이 되면 당연하다는 듯 TV 앞에 못 박히게 되었고, 잡지 쪽에서는 몇 번이나 대 특집을 편성해서 마침내는 호화판 무크(MOOK)까지 만들게 되었다.

이에 병행해서 건담이 하나의 사회현상이라고 할 정도로 붐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는 여기서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동전사 건담은 도대체 무엇으로 소년소녀의 마음을 그렇게 잡고 놓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아직까지 그 핵심을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가 없다. 지금 와서 보면 건담이라는 프로그램은 확실히 보편적인 재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작화나 기술적인 면 등에서는 상당히 미숙한 점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그런 것들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마치 마법에 걸린 듯한 기분으로 마음을 빼앗겨 버렸던 것이다.

또한 TV 애니메이션의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보더라도 건담은 결코 돌연변이적인 또는 기적적으로 출현한 것이 아니었다. 우주전함 야마토나 그 이전에 다양한 로봇 애니메이션들이 존재했고, 그러한 작품의 흐름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위에서 성립된 작품이 건담이었다. 하지만 역시 건담은 그 이전의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지녔다. 다양한 면에서 획기적인 작품이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기동전사 건담의 매력에 대해서 상세하게 분석할 생각은 없다. 그 정도 페이지가 나에게 할애되지도 않았고, 또한 도저히 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거기다 건담에 대해서는 막 대단하다고 해도 좋을 평론이 이미 나와 있어서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팬을 위해서라도 건담이라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뛰어난 특징에 대해서 정리해서 써 보고자 한다.

보통 우리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분석할 때 몇 가지 기본적인 기준을 가지고 작품에 대해 어프로치를 시도한다. 그러니까 그 작품의 세계관, 스토리, 캐릭터, 영상, 음악, 테마 등을 하나하나 검토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담의 경우는 어떨까.

먼저 세계관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만들어진 대부분의 로봇 애니메이션이 시간이나 공간의 설정에 있어 소위 말하는 언젠가 어딘가라는 애매한, 말하기 미안하지만 허술한 전제로 세계관을 만들어 왔던 것에 반해, 건담에서는 미래를 명확히 예측하는 형태에서, 그러니까 어쩌면 인류의 미래에 있어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세밀한 고증에 기반을 둔 설득력 있는 세계관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페이스 콜로니의 설정도 이것은 실제로 미국의 계획도 브라이언 오닐 박사의 지도 아래 ‘스페이스 콜로니 계획’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고, 모빌슈트도 그때까지의 완구 장난감용 로봇이라는 것이 아니라 매니퓰레이터의 장래적인 형태로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스토리 면에서 건담이 가진 특징은 일반적인 드라마처럼 확실한 기승전결에 기준해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까 작품의 배후에는 이미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존재하고, 그 한중간에서 작품은 시작된다. 한 화 한 화가 그 과정의

 한 컷 한 컷을 채워나가는 듯한 구성이 되어 있어, 이야기가 곧 역사에 쫓고 호흡할 뿐만 아니고, 그런 점이 오히려 시청자의 상상력을 돋워서, 우주의 유구한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캐릭터에 대해서인데, 종종 건담은 권선징악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확실히 논리적인 메시지로서의 권선징악은 희박하지만 기본적으로 선-지구연방 측, 악-지온 공국 측이라는 라인을 끝까지 확실하게 지켜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지금까지와 다른 점은 악의 측에도 상당히 확실한 논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논리가 악의 측의 변명이라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안고 있는 제반 문제, 인류가 장래에 아마도 직면하게 될 현실을 근거로 삼아서 짜 올린 것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게 강한 리얼리티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캐릭터라고 하는 면에서 또 하나의 특징적인 것은 역시 주인공의 이미지일 것이다. 건담의 주인공 아무로는, 소위 말하는 히어로가 아니다. 성실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연약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소년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전쟁에 뛰어드는 것에 계속 의문을 안고 괴로워하며 끝까지 거기에서 해방되지 못한다. 한편, 아무로에게 적대하는 샤아도 소위 말하는 악한 히어로가 아니다. 너무 뛰어난 두뇌와 매력으로 사람을 사로잡는 점에서는 뛰어난 리더십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는 자신의 우수한 군인이라는 점에 확고한 자신을 지니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아무로와 같은 심정을 안고 있다. 게다가 그의 경우에는 자신이 지온 공국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뉴타입이 되지 못했다고 자각하는 복잡한 콤플렉스가 있어, 그것이 ‘니힐리즘’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아무로와 샤아의 내면의 갈등은 현대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지니고 있는 두 가지 기본적인 심정을 훌륭히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그 두 사람에게 팬의 인기가 집중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캐릭터 조형의 훌륭함은 아무로나 샤아뿐만이 아니다. 화이트베이스의 멤버 한 사람 한 사람, 지온 공국 측의 인물들도 저마다 개성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야스히코 요시카즈 씨에 의해 단순히 잘 그려졌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색감’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 디자인에 의해 그 매력이 배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상으로서는 어떨까. 내가 건담을 보면서 영상 면에서 가장 감탄한 것은, 내려다보는 신이나 롱샷이 실로 효과적으로 삽입되어 있다고 하는 점이다. 그때까지처럼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2차원 화면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화면 전체를 활용하는 장면 구성에 의해 보는 사람은 자신이 마치 광대한 우주공간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테마에 대해서인데, 이것이 꽤 어렵다. 아마도 토미노 씨의 머릿속에는, 주인공 아무로의 성장 과정과 뉴타입이라는 개념의 해명, 인류가 성장해 가는 과정, 두 가지를 동시에 병행적으로 그려내고, 그리고 개인과 집단이라는 양쪽의 시점에서 이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품 그 자체가 리얼리티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이것은 자칫하면 작품 자체의 세계관을 배신하고 진부한 낙관론으로 떨어질 우려가 있다. 물론 토미노 씨도 그런 것은 간파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전쟁이나 다양한 비참함으로부터 아직 해방되지 않고 있는 인류의 현실, 한편에서는 그러면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발신하려고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토미노 씨는 건담 이후의 작품에서도 이 두 가지 의식을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부러 희망의 메시지를 이끌어내려고 하면, 그것도 시청자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듯한 형태로 묘사하려고 하면, 뉴타입이라고 하는 개념을 아무래도 요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뉴타입이라고 하는 개념은 확실히 말해서 상당히 수상한 것이다. ‘ESP 능력 따위는 전혀 지니고 있지 않은 우리들에게, 그것이 인류 혁신의 계기가 된다는 것은 도저히 실감할 수 없고, 하루에 확실히 생물의 종의 진화가 어느 정도 시기에 비약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과학적 사실을 알고 있어도, 인류가 가까운 장래 종으로서 다음 단계로 진화를 해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토미노 씨 자신도 뉴타입의 실체를 확실히 잡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그래도 우리는 뉴타입이라고 하는 것에 마음이 끌리고 마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들이 인류 규모의 거창한 목표를 발견할 수 없지만 그래도 희망만은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뉴타입에 대해서 멋대로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희망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라고.

이상 건담이라는 작품이 어떤 점에서 획기적이었는지에 대해서 서술해 보았다. 이제 건담이라는 말이 단순히 논문이 아닌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은 상태로 말하자면, 나는 건담이 가진 매력의 핵을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 없다고 했는데, 굳이 말하자고 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기동전사 건담의 최대의 매력은, 역시 이 작품의 “인간미”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전에 이 정도로 우리들과 같은 차원의 레벨에서, 좋게 말하자면 인간의 온기, 속되게 말하자면 사람 냄새가 가득한 작품이 있었을까. 만드는 사람들의 망설임이나 고민이 그대로 표출되어, 각 분야의, 각각의 제작자들의 새로운 TV 애니메이션 영상을 만들고자 하는 기합이나 기백이 실감 나게 애니메이션 드라마가 되어 있었을까.

사람의 온기나 기합이라는 것은 상당히 정서적이고 애매한 표현이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자, TV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에 대해서는 요청이었기에 이렇게 썼는데, 실은 소설판 건담의 해설이기에 조금이라도 거기에 대한 언급을 했다. 최초로 내가 이 소설을 읽었을 때, 확실히 말해서 TV 건담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거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간행되는 토미노 씨의 소설을 접하고, 문장도 익숙해지고, 소설 그 자체도 좋아져 가는 요즘은 토미노 씨에 대해서 어떤 불안을 안게 되었다. 그러니까, 토미노 씨가 소설가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소설과 같이 개인적인 작업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입장으로부터 요청이 있어서 성립되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 나는 소설가 토미노 요시유키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작가 토미노 요시유키로서 활동해 주었으면 한다.

더구나 토미노 씨 정도로 열정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없다면, 과연 어떤 작품이 만들어질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극장판 『역습의 샤아』에 의해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가 완결되는 것을 계기로, 토미노 씨가 완전히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는 것을 나는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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