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생활 동안, 어린이 문화에서 죽음(특히 여자와 어린아이의 죽음)과 성(性)적 묘사는 터부였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지금까지도 그렇다. 일본에서는 70년대에 나가이 고와 조 아키야마 등의 일부 만화가가 소년지에서 죽음과 성이라는 터부를 깨뜨렸지만, 만화보다 대중에게 널리 퍼지는 TV의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그 터부를 깨는 것은 쉽지가 않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 TV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처음으로 죽음의 터부를 깬 것은 토미노 요시유키일 것이다. ‘애들을 속일 수는 없다’는 우직한 생각으로, 토미노 자신이 감독을 맡은 작품 속에서 때로는 잔혹하다는 평가와 전쟁을 찬미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확실하게 죽음을 묘사했다. 여자와 어린이라도 용서 없이 말이다.
하지만 그런 토미노조차 TV에서 성에 관한 터부는 깨지 못했다. 어린이들은 『건담』의 샤아와 라라아의 대화에, 『이데온』의 기제와 세르의 관계에서 성(性)의 냄새를 맡았지만 죽음만큼 확실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프로그램이 팔린다면 전투 중에 죽는 것에 대한 묘사는 OK지만, 아무리 잘 팔려도 성적 묘사는 곤란하다는 것이 TV의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토미노는 그런 이유로 물러날 인간이 아니다. 두고 보자는 듯이 TV보다 개인적인 미디어를 통해 성을 묘사한 것이다. 그것이 토미노씨가 집필한 건담 소설인 것이다.
집요하게 묘사되는 남녀 관계
그 발단은 1979년 소노라마 문고에서 간행된 소설판 『기동전사 건담』(지금은 카도카와 문고)이다. 당시 그 ‘건담’일 것이라 생각하고 읽었던 초등학생들은 이 소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처음부터 군인이 되고, 세이라씨와 자게 되고, 결국 중간에 죽어버리는 아무로. 그리고 마지막에 카이와 샤아가 한 편이 되어 기렌을 죽이는 전개…… 아무로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놀랐지만, 무엇보다 아무로와 세이라씨가 성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에 의해 ‘소설 건담은 야하다’라는 소문이 어린이들 사이에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왜 토미노는 이런 건담을 썼을까? (제가 낡은 활자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밀회의 카도카와 스니커 문고판 저자 후기에서)라는 말처럼 토미노 자신의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문자에 대한 신앙 때문일 것이다. 소노라마 문고의 ‘건담’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소설은 어린이들이 읽을 책은 아니다. 그렇다. 토미노는 결국 ‘어린이들에게 현실을 알려야만 한다.’는 신념 하에 성에 관한 터부를 깨버린 것이다. ‘일정 연령 이상의 남녀가 있으면, 당연히 섹스를 의식하지 않겠나’라면서 말이다.
그 후에도 토미노는 발표하는 소설마다 집요하게 성을, 남녀 관계를 묘사했다. 이를 잘 나타낸 극장판 작품 『역습의 샤아』. 소설판인 『역습의 샤아 벨토치카 칠드런』. 극장판 『역습의 샤아』에서는 벨토치카와 아무로의 연인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소설판에서는 벨토치카와 아무로가 동침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아무로가 벨토치카의 아이를 임신시켰다는 설정까지 존재한다. 벨토치카로서는 충격받을 사실이지만, 아무로가 전혀 당황하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그리고 TV, 극장판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완전한 소설 『하사웨이의 섬광』에서도 브라이트의 아들 하사웨이가 성장하여 반정부 테러 조직을 이끌고, 퀘스를 죽이는 이야기 속에서 성과 죽음은 여전히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또한 『가이아 기어』에서도 주인공이 환경 변화에 의해 압박받으며 성과 죽음의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제발 그만둬’라는 말과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연인의 곁으로 돌아간다는,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결말을 가진 작품이다.
분노와 소원 사이에 버티고 있는 성과 죽음
여기서 인용한 것 외에도 『섬광의 하사웨이』와 『가이아 기어』에는 성적인 표현이 깊게 드러나 있다. 한편 두 작품 모두 로봇 전투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전쟁에 의한 이미지의 보고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스토리상 전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벨토치카 칠드런』은 그대로 극장판의 시나리오가 되었지만, ‘모빌슈트는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기획 회의에서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역시 죽음은 몰라도 성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미노의 관심이 인간의 성과 죽음에 있다는 것은, 어느 소설에서나 명확하게 드러난다.
자, 지금까지 토미노의 건담 소설에서의 성적 묘사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했는데, 사실 성이건 죽음이건 따로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계속 반복되지만, 이것은 인간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감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토미노가 성에 강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위한 수단일까? 다른 원고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토미노 작품이 지닌 재미의 본질은 ‘인류 전체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분노와, ‘뭔가 아름답고 순수한 것을 보고 싶다’는 소원의 분열에 있다. 그리고 그 분열의 중심에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과 성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토미노가 그리는 건담 세계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철저하게 파헤치는 작업, 그것이 그의 작품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때로는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표현 방식이다. 어쨌든 토미노는 개인적인 작품인 소설에서 모빌슈트를 부정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작품들은 영상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토미노 본인은 기분이 복잡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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